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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려인삼이란2018-11-22 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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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려인삼이란 

고려인삼 [人蔘, ginseng, Panax ginseng]의 학명은 Panax ginseng C. A. Meyer로 표기하는데 이는 1843년 러시아의 식물학자인 C. A. Meyer에 의해 명명되었다. 고려인삼의 속명인 Panax는 그리스어로서 Pan과 Axos 라는 두 단어의 복합어 인다 Pan은 “모든”이라는 뜻이며 Axos 는 “치료한다”라는 뜻으로써 “모든병을 치료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편 고려인삼의 종명을 나타내는 “ginseng"은 인삼의 중국어 발음을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독일의 Nees von Esenbeck가 1833년에 그의 저서 “Icones Plantarum Medicinalium"에서 한국인삼을 Panax Schinseng Nees라고 기술하였는데, 이것이 한국인삼에 대한 진짜 학명이지만 그보다 10년후에 발표된 Panax ginseng C. A. Meyer가 더 널리 알려져 고려인삼의 학명으로 고정된 것이다. 
원래 야생 산삼은 깊은 산의 숲속에서 자라며 높이 60cm이고 줄기는 해마다 1개가 곧게 자라며 그 끝에 3~4개의 잎이 돌려난다. 잎은 잎자루가 길고 잎은 5개로 갈라져서 손바닥 모양 겹잎을 이룬다. 작은잎은 바깥쪽의 것이 작고 가운데 3개는 길이 4.5~15cm, 나비 3~5.5cm로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는 가는 톱니가 있다. 잎 앞면의 맥 위에는 털이 있다. 

여름에 1개의 가는 꽃자루가 나와서 그 끝에 4~40개의 연한 노란빛을 띤 녹색의 작은꽃이 달리며 산형화서의 형태를 지닌다. 꽃잎과 수술은 5개이며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핵과로 편구형이고 지름 5~9mm이며, 성숙하면 선홍색으로 익는다. 

뿌리는 약용하며 그 형태가 사람 형상이므로 인삼이라 한다. 고려인삼은 예로부터 불로,장생,익기(益氣),경신(輕身)의 명약으로 일컬어진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고려인삼의 뿌리는 주근과 2~5개의 지근(支根)으로 되어 있고 미황백색이다. 지근의 수는 토질,이식방법,비료,수분 등에 의해서 차이가 있으나 분지성이 강한 식물이며 그 뿌리의 형태는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고 수확은 4~6년근때에 한다. 


2.고려인삼의 형태 

뿌리는 비대근으로 주근과 2~5개의 지근으로 되어 있고 미황백색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고려인삼은 1년 묘삼을 밭에 45도 각도로 심기 때문에 고려인삼의 지근이 사람의 다리모양을 하고 있으나 고려인삼 종자를 직파하는 경우는 당근의 뿌리처럼 자라서 우리 고려인삼의 뿌리와는 다른 모양을 갖게된다. 따라서 직파재배를 주로하는 중국삼 및 미국삼과는 뚜렸한 형태적 차이를 지닌다. 고려인삼지근의 수는 토질, 이식방법, 비료, 토양, 수분 등에 의해 차가 있으나, 뿌리의 분지성이 강한 식물이다. 부리의 발육과 형태는 연령에 따라 큰 차가 있고 수확은 4~6년근 때에 한다. 

6년근은 지하경(뇌두)이 비대해지고, 동체의 길이가 7~10㎝ 직경이 2.5㎝내외, 수개의 비대지근을 가지고 있어 뿌리의 길이는 약 34㎝이고 무게는 36g이며, 때로는 300g이 되는 것도 있다. 7년생 이상이 되면 비대성장은 더디고, 체형의 균형이 불량해지고 표피는 목질화, 색택은 열변, 내공, 내백화 등으로 품질이 저하되는 고로 고려인삼은 6년이상 재배하지 않는다. 

매년 고려인삼 뇌두에서 줄기가 발생하여 자란 후 가을에는 고사한다. 뇌두에는 매년 고사경의 흔적이 남아, 이것이 뇌두의 크기에 영향을 끼치는데 근령이 많을수록 경흔이 많고, 경수가 많을수록 흔적이 많아 결국 뇌두가 커지는데, 고려인삼의 품질은 뇌두가 클수록 양품으로 취급된다. 한국산은 경수가 많고 뇌두가 큰 것이 특징이고 그 결과 고가로 판매된다. 특히 야생 산삼의 경우 뇌두의 크기 및 경흔에 따라 품질이 크게 달라진다. 

잎은 여러 개의 소엽병과 대엽병으로 된 장상복엽을 형성하는데, 1년생의 잎은 3소엽병으로 되어 있고 2년생 이상은 5개의 소엽병으로 하나의 장엽을 이루고 윤생한다. 1년생은 장엽수가 1개, 2년생은 2개, 3년생은 3개, 5년생은 5개로 연령에 따라 그 수가 비교적 규칙적으로 되어 있으나 생육상태에 따라 변이가 있다. 

꽃은 완전화이고 경의 정단에 대엽병이 윤생한 곳에서 한 개의 화경이 발생하고 화경 끝에 산형화서를 형성한다. 꽃은 3년생부터 피는데 화수는 약 10개, 4년생은 20개, 5년생은 35개, 6년생은 50개 정도가 된다. 꽃은 5월 중순경에 피고 장과(berry)의 성숙은 7월중순경이다. 종자는 한 과실내에 2개가 들어 있다. 

고려인삼은 과실이 성숙해도 종자내의 배는 미숙상태로 있고 배장은 겨우 0.4mm 이하 정도이다. 종자 발아는 자연방임상태로는 21개월이 소요되므로 인위적으로 후숙을 시켜야 된다. 즉 채집종자를 15~20℃하에 후숙처리를 하면 배가 성장하면서 10월하순경에는 종자의 내실피가 파령되는데 이것을 개갑이라고 한다. 그 후 배는 계속 성장을 해서 11월의 파종기에는 3.0~4.5mm 가량된다. 

3.인삼의 형태 

인삼을 대표하는 고려인삼은 수천년동안 신비한 영약으로 인정되어 왔다. 학명은 Panax ginseng C.A. Meyer이며 이 식물은 우리나라 외에도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도 자생되거나 재배된다. 인삼중에서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것이 약효가 탁월하여 고려인삼으로 명칭되고 있으며 중국에서 생산되는 삼은 중국삼, 일본삼, 러시아삼이라고 불리우며 최근에는 통칭하여 Acatic ginseng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 

고려인삼 외에도 아메리카 대륙에 분포하는 화기삼이라 불리는 Panax quinquefolium 이 있는데 미국삼 및 아메리카삼이라고도 불린다. 일본에는 인삼외에도 죽절삼 (Panax japonica)이 자생하고, 중국에는 삼칠삼 또는 전칠삼 불리는 Panax notoginseng이 재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약 11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베트남 및 히말라야 (Panax pseudoginseng) 및 인도 등지에도 Panax 속 식물이 존재한다. 



        

    인삼의 역사 

1.고려 인삼의 가공 역사 

고려인삼은 채집한 채로의 생근을 약생인 것은 산삼, 재배품인 것은 수삼이라고 하지만, 보존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될 따름이고 보통은 가공하여 백삼(표피 음지), 피촌백삼, 홍삼, 곡삼, 당삼, 미산삼의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고, 또 고려인삼을 원료로 하여 차제, 주제, 정제, 액제, 엑기스제, 외용제 등의 각종 2차적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백삼은 채집한 고려인삼근을 깨끗이 수세한 후 표피를 제거 또는 그대로 둔채 일광에 건조시켜 만든 것이고, 건조 시킬 때 근의 동체하부를 굴곡시켜서 고정시킨 제품을 곡삼이라고 한다. 홍삼은 백삼에 비하여 가격이 월등하게 고가이며, 중국에서는 고려인삼이라고 하면 주로 홍삼을 지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홍삼과 백삼은 가공정도의 차이로 인하여 선당 성분조성, 약효성 및 보존성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보존성 이외에는 아직도 성분이나 약효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기대되고 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인삼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의 하나로 이와 같은 인삼의 수제법(가공법)이 옛날부터 크게 발달되어 온 것을 들 수 있다. 

본초강목의 인삼집해를 보면, “신라 소공자 유수족장 여인형 장척여이핵목거정”이라는 기재가 있으며, 이미 신라 때부터 우리의 고려인삼제품이 상품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가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홍삼이라는 문자가 정종실록(A.D. 21)기제에 처음 나왔다 하여, 그 무렵을 홍삼수제법 개발의 때라고 고증함은 단견이며, 송인 서극이 정사수행원으로 1123년(고려 인종원년)에 고려에 다녀간 후 견문을 기록한 선화봉사 고려서경에 고려인삼을 기록한 대목으로 보면, 고려 때에 벌써 홍삼이 개발되어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본초강목에도 “고려삼근비”라는 표현이 있는 것과도 부합된다. 

또다른 문헌에도 고려인삼을 삶아 먹는 전통, 기담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인삼을 삶아 먹는 관습이 있었던 모양이고, 그것은 손아삼이니 동삼이니 하여 고려인삼의 형태를 사람의 형상으로 보고 인체를 삶는다는 사고 방식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인삼근의 형태가 사람의 동체 및 4지를 닮았다 하여 고려인삼의 인자가 생겼으며, 형태가 인체가 사람 모양에 가까울수록 높이 평가되는 습관이었고, 형상에도 음양이 있어, 여성 모양이니 남아 모양이니를 구별라고, 고려인삼근이 지중에 있을 때 야반에 미음성을 낸다느니, 그 근처에 야음중에도 미광이 있다는 등의 미신이 있는 것이 마치 서양의 Mandragora의 미신과 유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도 고려인삼 채집자가 산삼을 탐색할 때에 기도, 주문 등을 외고 꿈같은 것을 신앙하는 풍속이 있는 것은 과학시대에 우스운 미신이요, 낡아 빠진 의식 또는 타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고려인삼의 약효를 그 만큼 신성시하였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고려인삼은 주로 근을 약용으로 사용하나, 두부에 해당되는 뇌두는 특수한 목적 이외에는 제거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잎, 꽃등도 차제, 속제 등으로 이용된다. 

고려인삼의 구체적인 약효로서 전승 요법에 다음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1) 원기회복, 2) 해열, 3) 항결핵작용, 4) 혈압조정, 5) 소화항, 6) 신경강장제, 7) 건위 및 지사, 8) 간기능강화, 9) 이뇨작용, 10) 지혈작용, 11) 강심작용, 12) 종양치료작용 등이며. 현대약리학적 지견과도 일치된다. 


2.고려인삼 재배역사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인삼재배가 시작되어 그 재배기술도 발달되어 왔다. 따라서 그 재배방법을 기술한 문헌도 많으며 그러한 문헌으로서는 《해동역사》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구한국 삼정국(舊韓國蔘政局)에서 조사한 《재래경작법》 등이 있었다. 그 후 개성지방에서 발달된 경작법, 금산지방의 경작법 등이 전래되어 왔으나 현재는 표준경작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1578년 저술된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따르면 당시 중국의 야생인삼자원은 모두 고갈되어 더 이상의 채취가 불가능하고 요삼 즉 고려인삼 만을 수입하여서 사용하고 있다 하였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명나라 시대 까지도 중국에서는 인삼의 재배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의 인삼재배는 청대의 후기에 와서 본격화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청의 건융년대 중기 이후 말년까지는 산양삼이 주였고 가경, 도광년대에는 점차 그 규모가 커져서 농업화 되기 시작하였다 한다. 1925년 중국의 인삼 총 생산량은 약 750M/T이었으며 1950년 이후부터 인삼의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급증하여 1980년에는 길림성의 경우 재배면적이 1950년에 비해 36배가 증가되었다. 현재 중국의 주요 인삼재배 지역은 중국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길림성을 위시하여 요령성 및 흑룡강성의 3개 지역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말엽에서부터 우리의 선인들이 인삼의 재배를 시도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며 1578년에 저술된 이시진의 본초강목 중에 당시 우리 나라에서 인삼이 재배되고 있었음을 명백히 기술하였다. 1500년대에는 이미 인삼종자를 개갑 처리하여 파종할 정도로 인삼재배 기술이 발전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영조대왕 시대에 와서 우리 나라의 인삼재배는 크게 발전되고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었던 시기로 보이며 정조 14년의 기록에는 경상, 원춘 양도의 봉진물 중에 가삼이 많다고 하였는데 가삼이란 재배된 인삼을 뜻하며 이는 당시에 인삼재배가 전국적으로 성행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정조 시대에 서유규는 그가 저술한 임원심육지에 해동농서와 종삼보등을 인용하여 가삼재배법에 대하여 기술하였으며 헌종 초년에는 개성의 보부상인 최문이 여러 지방의 인삼경작을 목격하고 돌아와 개성의 풍토에 알맞는 인삼의 집약재배법을 고안하였다. 




3.고려인삼의 근대사 

한국고려인삼이 수천년 동안 전해오는 신비한 만능약으로 동양의학의 왕좌를 차지하여 왔으나, 서양에 소개된 것은 수세기에 불과하다. E. U. Chasse 에 의하여 1,610년에 최초로 고려인삼이 화란인에 의하여 서구에 소개되었다고 하며, 1653년 8월 16일에 한국의 Quelpaerts도 (현재의 제주도)에 난파되어, 1666년 9월 14일까지 한국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Hendrick Hamel의 조선표류기 가운데 한국특산품으로서 고려인삼이 기술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692년에 화란인 Nicolass Witsen이 간행한 동방강단기(Noord en Oosst Tartayen)가운데에도 고려인삼의 기록이 있다. 그러나, 고려인삼의 생태 및 약효를 스스로 관찰 또는 체험하여 상세하게 보고한 기록은 예수회의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프랑스인 Jartous의 1711년 4월 12일자 서간 속에 나와 있다. 이 책속에 1714년에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에 고려인삼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자가 그 후에, 캐나다 몬트리올의 프랑스인 선교사 Francois Lafiteau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그 기록 가운데 고려인삼의 사생도를 모호크족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그들이 대번에 알아보고 신부와 같이 숲에 가서 실물을 채집하는데 성공하였다. Lafiteau는 채집한 표본을 프랑스 본국에 보내어 식물학자로 하여금 감정케 하여, 그것이 五加科 (Araliaceae)에 속하는 Panax quinque folium (미국인삼)임을 밝혀졌다. 이 발견이 계기가 되어 캐나다 및 북미에 고려인삼 붐을 불러일으켜 1715년부터 중국에 수출하여 막대한 수입을 획득하는 시초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지금까지 캐나다 및 북미에 있어서 고려인삼이 경제농작물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점차 고려인삼의 효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예컨데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시의 A. R. harding, M.D. 은 고려인삼투여가 어떤 딴 약물보다도 질병치료에 유효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고려인삼재배와 고려인삼관계 서적 간행에 여생을 바친 사람조차 나타나게 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Ginseng and other Medicinal Plants(1908년)"가 있다. Louis Vening의 『The Ginseng Book』와 Dr. E. Grey Dimond의 『More than Herbs and Acupuncture』등 저서에서도 기술되어 있듯이, 현대 의학이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동양의 전통적 약물비법에 대하여 관용적인 관심과 이해를 지니기 시작한 것은 고려인삼의 신비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촉진제가 되고 있다. 

고려인삼의 약리작용에 대해서는 1958년에 I. Brekhman과 I. V. Dardymov 두 학자가 지금까지 약리학설을 근거로부터 혁신하는 놀라운 논문 "New Substances of Plant Origin which incerase Non-Specific Resistance"를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고려인삼의 약리작용이 비 특이성 저항력 증대라는 것을 규명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저항력 증대와 생체의 방어력 강화의 본능을 Adaptogen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냈으며, Adaptogen이 지녀야 할 조건을 Brekhman은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하였다. 

1. Adapogen이란 것은 비독성이며, 장기가 갖는 생리기능 저하를 최소로 나타내야 함. 
2. Adaptogen작용이란 것은 비국부적이며, 비특이적이어야 함. 즉, 그것은 광범위에 걸친 물리적, 생물학적 이상에 대한 신체저항성을 증가시킴 
3. Adaptogen이란 것은 정상화효과를 갖는 조절계이어야 함 
  
4.고려인삼의 유래 

고려인삼은 아시아 극동지방에서만 자생하는 식물로서 한반도 전지역, 중국 만주지방, 러시아 연해주지역에서만 자생한다. 고려인삼에 대한 역사적 첫기록은 중국 전한 원제(前漢元帝) 시대(BC: 48~33) 《사유(史遊)》의 <급취장(急就章)>에 삼(參)이라 나와 있고, 후한 헌제(後漢獻帝) 건안연대(AD 196~220) 장중경(張仲景)의 《상한론(傷寒論)》에도 고려인삼의 처방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 후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펴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모든 약을 상,중,하로 분류하고 그 약효를 설명하였는데, 상약 120종, 중약 120종, 하약 125종으로 나누고 고려인삼은 상약 중에 편입하였다. 도홍경은 이를 해설하기를 "상약은 무독하며 많이 복용하거나 오랫동안 복용해도 사람을 상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고려인삼의 보신용인 재료로 사용된 근거는 후한시대 헌제건안년도(서기 196~200) 장중경의 <상한론>에 있는 총 113개 처방 중 고려인삼배합처방이 21개나 수록되어 있다. 그 후 명의별록, 신농본초경, 신농본초경집주, 경약전서, 방약합 편, 동의 보감등 많은 의서에 보신약제로의 고려인삼기록이 있다. 

수(隋)를 거쳐 당대(唐代)에 발간된 처방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은 《외대비요방(外臺秘要方)》의 6,900여 방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처방서와 처방수가 증가함과 동시에 고려인삼의 사용도 급격히 증가되었다. 송대 (宋代)에 이르러서는 의사행정이 크게 진흥되고 제도의 완비, 관의의 배치, 의원의 교육양성기관 등이 갖추어졌고 역대의 제왕이 의사(醫事)에 깊은 관심을 보여 각종 본초서(本草書)가 출간되었다. 

금(金),원(元)을 통하여 250년간은 송의학을 발판으로 하여 명의가 배출되었다. 그 중 갈가구(葛可久),이동원(李東垣),주단계(朱丹溪)는 고려인삼과 가장 깊은 관계가 있다. 갈가구는 《십약신서(十藥神書)》를 저술하고 10방 중 허로토혈의 증세를 치료함을 전문으로 하였는데, 그 처방 중에 고려인삼을 가한 것이 3방이 있다. 이동원은 비위전문으로 보약을 강조하였으며, 주단계는 양음설(養陰說)을 주창하였다. 동원,단계 두 사람은 고금 인간의 기질과 체격 등은 차이가 있다 하여 옛날 처방을 쓰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처방을 창안한 것이 많으며 그 처방 중에는 고려인삼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많다. 

고구려,백제,신라에서는 당시 풍부하게 고려인삼이 산출되었고《백제신집방(百濟新集方)》 《신라법사방(新羅法師方)》이라는 처방서도 있었다고 한다. 고려 초기에는 전의시(典醫寺)라는 관청을 두었고 고려 목종(穆宗) 대를 전후하여 많은 의서들이 출간되었다. 한편, 조선 초기에도 의학은 크게 진흥을 보지 못하였으나 세종(世宗) 이후에는 의학관계 서적도 저술되었는데, 그 중 대저(大著)는 《향약집성방》과 《동의보감》이다. 고려인삼의 인공재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모두 자연생으로서 그 가격이 매우 고가였기 때문에 상류층에서만 사용되었고 일반 서민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던 것이 고려인삼의 인공재배가 창시된 이후 그 산출이 증가되고 가격도 저하됨에 따라 서민들도 이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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